【오쿠노시마의 역사】 독가스의 섬에서 토끼의 낙원으로|게이요 요새・독가스 공장・전쟁 유적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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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현 다케하라시의 다다노우미(忠海)항에서 페리로 약 15분, 세토내해에 떠 있는 작은 섬 오쿠노시마(大久野島). 사람을 잘 따르는 야생 토끼들이 반겨주는 “토끼의 섬”으로 최근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이 섬에는 종전까지 지도에서 지워져 있던 또 다른 얼굴이 있습니다.

전쟁 중 옛 일본 육군의 독가스 공장이 세워지면서, 섬의 존재 자체가 비밀에 부쳐졌던 “독가스의 섬”으로서의 역사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실제로 섬을 걸으며 촬영한 전쟁 유적 사진과 함께 오쿠노시마가 걸어온 역사를 소개합니다.

오쿠노시마의 토끼

게이요 요새 시대 – 독가스 공장보다 앞선 역사

오쿠노시마가 군사 시설로 사용된 것은 독가스 공장보다 훨씬 이전의 일입니다. 러일전쟁이 시작되기 전인 1902년(메이지 35년), 세토내해 방위 거점으로 “게이요 요새”의 일부인 오쿠노시마 보루가 설치되었습니다. 섬 안에는 북부·중부·남부 세 곳에 포대가 설치되었고, 합계 22문의 대포가 배치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북부 포대 유적 안내판

게이요 요새는 1924년(다이쇼 13년)에 폐지되었지만, 지금도 섬 곳곳에는 당시의 터널과 지하 병사(兵舍) 흔적, 포좌 흔적 등이 남아 있으며, 환경성이 설치한 안내판을 통해 역사를 알 수 있습니다.

독가스 공장의 건설과 “지도에서 사라진 섬”

요새 폐지 후, 다다노우미정(당시)은 지역 경제 대책으로 육군 시설 유치에 나섰고, 1927년(쇼와 2년)부터 공장 건설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1929년(쇼와 4년) 4월 1일, “육군 조병창 화공창 다다노우미 병기제조소”가 문을 열었습니다. 간토 대지진 이후 육군의 방침에 따라 노동력과 자재를 확보하기 쉽고,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피해를 섬 안으로 한정할 수 있으며, 중국 대륙과도 가깝다는 점이 이 섬이 선정된 이유로 꼽힙니다.

독가스 공장 건물의 흔적

공장의 존재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습니다. 당시 육지측량부가 발행한 지도에서는 오쿠노시마가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백지 지역으로 취급되었고, 이것이 “지도에서 사라진 섬”이라 불리는 이유입니다. 함구령이 내려지고 헌병이 엄격히 감시했으며, 섬 전체에 나무를 심어 녹음으로 가리고 건물에는 위장이 시행되었습니다. 인근을 지나는 구레선(呉線) 열차는 섬이 보이는 구간에서만 창문 덧문을 닫았다고도 전해집니다.

제조되었던 독가스

1929년부터 1944년 무렵까지 오쿠노시마에서는 약 6,600톤의 독가스가 제조되었습니다. 비밀 유지를 위해 각 약제는 색깔 이름의 암호로 불렸습니다.

분류약제
황제(黃劑, 미란제)이페리트(겨자가스)
적제(赤劑, 구토제)디페닐시아노아르신(DC)
녹제(綠劑, 최루제)클로로아세토페논
혈액제청산(시안화수소)

이 외에도 발연통과 풍선폭탄의 구형 부품 등도 제조되었습니다. 최전성기에는 최대 약 5,000명, 누적으로 6,500명 이상이 이 섬에서 일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제조 작업과 전후 처리 과정을 통해 독가스로 인한 건강 피해를 입은 사람은 약 6,800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종전과 그 이후의 처리

독가스 저장고 흔적으로 보이는 유구

1945년 8월 15일, 공원(工員)들은 섬에서 옥음방송을 들었습니다. 종전 후 옛 일본군으로부터 설비 해체와 증거 인멸 지시가 내려졌고, 당시 기계공이었던 무라카미 하쓰이치는 같은 해 8월 18일부터 신형 제조 장치를 해체해 인근 바다에 투기하는 작업을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같은 해 11월에는 미육군 제41보병사단이 현지 조사를 실시했고, 제58화학전 중대가 발연통과 원료 물질을 중심으로 처리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46년 5월부터는 본격적인 처리가 영연방 점령군(BCOF)으로 이관되어 “오퍼레이션 루이사이트”라 불리는 처리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일본인 작업원 약 300명이 동원되었고, 이페리트와 루이사이트 합계 약 1,854톤이 고치현 앞바다에 해양 투기되었으며, 재채기제(적제)는 섬 내 방공호에 매설, 발연통은 소각 처리되었습니다. 이 처리 작업은 1946년 5월 8일부터 1947년 5월 27일까지 약 1년에 걸쳐 계속되었습니다.

오쿠노시마 독가스 자료관

오쿠노시마 독가스 자료관 입구

섬 안에는 “오쿠노시마 독가스 자료관”이 있어, 당시의 역사적 사실을 전하는 자료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공장의 옛 종업원과 그 유족이 기증한 귀중한 자료도 많으며, 전쟁의 비참함과 평화의 소중함을 후세에 전하는 시설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입구에는 “오쿠노시마는 호소한다 – 전쟁의 비참함을, 평화의 소중함을, 생명의 무게를”이라는 문구가 걸려 있어, 이 섬이 짊어져 온 역사의 무게를 느끼게 합니다.

섬 안에는 자료관 외에도 독가스 공장과 게이요 요새에 관련된 유적이 곳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노후화로 출입이 제한된 곳도 많으므로, 견학 시에는 안내판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좋습니다.

벽돌 아치가 이어진 포대 흔적

토끼의 섬이 된 이유

땅바닥에서 쉬고 있는 오쿠노시마의 토끼

오쿠노시마 하면 이제는 사람을 잘 따르는 토끼들이 관광객을 맞이하는 “토끼의 섬”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독가스 실험에 사용되던 토끼의 후손”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는 속설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자료관의 초대 관장을 지낸 무라카미 하쓰이치는 전시 중 야생 토끼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증언했으며, 실험에 사용된 토끼는 종전 후 시설 처리 과정에서 모두 살처분되었기 때문에 현재의 토끼와는 혈연관계가 없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정설에 따르면 1961년 섬이 국민휴가촌화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마스코트 동물로 토끼가 도입되었습니다. 1971년, 지역 초등학교에서 기르던 토끼 8마리가 섬에 방사되었고, 이것이 야생화되어 번식한 것이 지금 토끼들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이후에도 섬으로 토끼를 들여오는 일이 반복되면서 개체 수가 늘어났습니다.

토끼의 수는 관광객의 먹이 주기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2018년에는 추정 920마리 이상까지 늘었지만, 코로나19 유행으로 관광객이 줄어들어 먹이 주기가 감소한 영향으로 2021년 목측 조사에서는 약 400마리까지 줄었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가는 방법과 방문 시 주의사항

오쿠노시마는 JR 구레선 다다노우미역에서 도보 약 3분 거리의 다다노우미항에서 페리로 약 15분입니다. 섬 안에는 숙박 시설 “큐카무라 오쿠노시마”와 캠프장도 갖춰져 있어, 당일치기는 물론 숙박하며 여유롭게 섬을 둘러볼 수도 있습니다.

  • 독가스 자료관은 입장료가 있습니다. 개관 시간은 사전에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해 두면 안심입니다.
  • 전쟁 유적 대부분은 노후화가 진행되어 출입 금지 구역도 적지 않습니다. 안내판과 울타리의 지시를 반드시 따르세요.
  • 토끼에게는 섬 안에서 판매하는 전용 펠릿을 주세요. 채소 찌꺼기나 빵 등 사람이 먹는 음식은 건강을 해칠 수 있으니 피해야 합니다.
  • 안아 올리거나 쫓아다니지 말고, 토끼의 속도에 맞춰 교감하세요.

사랑스러운 토끼들에게 힐링받으면서도, 이 섬이 걸어온 무거운 역사에도 눈을 돌려보는 것. 오쿠노시마만의 그런 여행을 꼭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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