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시노 전투는 1575년(덴쇼 3년), 지금의 아이치현 신시로시에서 일어난 전투입니다. 다케다 가쓰요리의 군대가 나가시노성을 포위했고, 성을 구하러 온 오다 노부나가·도쿠가와 이에야스 연합군과 시타라가하라에서 맞붙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나가시노 전투의 흐름을 나가시노성 농성전, 도리이 스네에몬 이야기, 시타라가하라 결전의 순서로 연표와 함께 알기 쉽게 소개합니다. 나가시노성 터와 시타라가하라 옛 전쟁터의 볼거리도 실제로 걸으며 찍은 사진으로 소개합니다.
저는 2026년 10월 12일 오전에 나가시노성 터와 시타라가하라 옛 전쟁터를 둘러보았습니다. 사진은 모두 그때 찍은 것입니다.
이 글의 정보에 대하여
- 정보 확인일: 2026년 10월 18일(아이치현 공식 관광 사이트 ‘Aichi Now’ 등에서 확인)
- 전투에 참가한 병사 수와 철포 수는 자료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널리 알려진 설을 소개합니다.
- 방문 전에 최신 정보를 확인해 주세요.
1. 나가시노 전투란? | 나가시노성과 시타라가하라, 두 장소

나가시노 전투는 ‘나가시노·시타라가하라 전투’라고도 불립니다. 전투의 시작은 다케다군이 나가시노성을 포위한 농성전입니다. 그리고 승패가 갈린 곳은 나가시노성에서 서쪽으로 떨어진 시타라가하라에서의 결전이었습니다.
지금은 나가시노성 터와 시타라가하라 옛 전쟁터 모두 신시로시에서 견학할 수 있습니다. 각각 가까운 곳에 전투 자료를 전시하는 자료관이 있습니다.
2. 나가시노 전투의 흐름
두 강이 만나는 곳에 세워진 나가시노성

나가시노성은 1508년(에이쇼 5년), 이 지역의 호족 스가누마 모토나리가 쌓은 것으로 전해지는 성입니다. 도요카와강과 우레강이 합류하는 절벽 위에 있어, 두 강을 해자 대신 삼아 방어를 굳혔습니다. 육지 쪽에는 토루와 해자를 만들었습니다.
미카와와 시나노를 잇는 길 중간에 있었기 때문에, 도쿠가와 가문과 다케다 가문이 서로 차지하려는 곳이 되었습니다. 1573년(덴쇼 원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성을 차지하고, 오쿠다이라 사다마사(훗날의 오쿠다이라 노부마사)를 성주로 삼았습니다.
다케다 가쓰요리가 나가시노성을 포위하다(1575년 5월)
1575년(덴쇼 3년) 5월, 다케다 가쓰요리가 대군으로 나가시노성을 포위했습니다. 한 설에 따르면 다케다군은 약 1만 5천 명, 성을 지키는 오쿠다이라군은 약 500명이었다고 합니다. 성은 격렬한 공격을 받아 함락 직전까지 몰렸습니다.
도리이 스네에몬, 원군을 부르러 가다
그래서 성의 병사 도리이 스네에몬이 이에야스가 있는 오카자키성까지 도움을 청하러 갔습니다. 14일 밤에 성을 빠져나와 다케다군의 감시를 피해, 다음 날인 15일에 오카자키성에 도착했다고 전해집니다.
스네에몬은 원군이 온다는 것을 성에 알리기 위해 되돌아갔지만, 나가시노성 근처에서 다케다군에게 붙잡혔습니다. “원군은 오지 않는다”고 외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성을 향해 “원군은 곧 온다”고 알리고 그 자리에서 처형되었다고 합니다. 이 소식 덕분에 성의 병사들은 끝까지 버텨 냈습니다.
시타라가하라 결전 | 마방책과 철포(1575년 5월 21일)

오다 노부나가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연합군은 나가시노성 서쪽의 시타라가하라에 진을 쳤습니다. 작은 개울 앞에 말의 돌격을 막기 위한 나무 울타리 ‘마방책(바보사쿠)’을 세우고, 많은 철포를 준비해 기다렸습니다.
21일, 다케다군은 시타라가하라로 공격해 왔지만 울타리와 철포에 가로막혀 많은 장수를 잃고 크게 패했습니다. 나가시노성은 지켜졌고, 다케다 가문은 이후 힘이 약해져 갔습니다.
한편 ‘철포 3,000정’, ‘3열로 나뉘어 번갈아 쏘는 삼단 사격’이라는 이야기가 잘 알려져 있지만, 철포의 수와 사격 방법에 대해서는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여러 설이 있습니다.
3. 연표로 보는 나가시노 전투
| 연도 | 사건 |
|---|---|
| 1508년(에이쇼 5년) | 스가누마 모토나리가 나가시노성을 쌓은 것으로 전해짐 |
| 1573년(덴쇼 원년) |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나가시노성을 차지함. 오쿠다이라 사다마사가 성주가 됨 |
| 1575년(덴쇼 3년) 5월 | 다케다 가쓰요리가 나가시노성을 포위함 |
| 1575년 5월 14~15일 | 도리이 스네에몬이 성을 빠져나와 오카자키성에 원군을 요청하러 감 |
| 1575년 5월 21일 | 시타라가하라에서 결전.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이 다케다군에 승리 |
4. 나가시노성 터의 볼거리
혼마루 터와 해자 터

나가시노성 터는 국가 사적이며, ‘일본 100명성’의 하나로도 선정되었습니다. 천수나 건물은 남아 있지 않지만, 혼마루 터는 넓은 잔디밭이 되어 있고 ‘나가시노성 혼마루 터’ 표주가 서 있습니다. 혼마루 주변에는 토루와 해자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실제로 가 보고 느낀 것은, 이런 곳에서 몇 배나 되는 병력 차이를 이겨 내고 잘도 지켜 냈다는 점입니다. 지형상 높은 곳에 혼마루가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결코 높은 곳은 아닙니다. 힘으로 밀어붙이면 금방 함락될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그런 성을 끝까지 지켜 낸 것은 정말 대단합니다.
나가시노성 터 사적 보존관

성터 안에는 ‘나가시노성 터 사적 보존관’이 있습니다. 오쿠다이라 가문에 전해지는 ‘피로 물든 진다이코(전투용 북)’, 전투에 참가한 무사의 후손들이 기증한 물품, 성터에서 발견된 철포 탄환, 갑옷과 투구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들어가서 전시물을 둘러보았습니다. 어느 전시물이든 볼 만한 가치가 있어 만족스러운 것들뿐이었습니다. 솔직히 220엔에 볼 수 있다니 저렴하다고 느꼈습니다. 안에는 사진 촬영이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이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 개관 시간 | 9:00~17:00(입관은 16:30까지) |
|---|---|
| 휴관일 | 매주 화요일(공휴일인 경우 다음 평일), 12월 29일~1월 3일 |
| 입관료 | 일반 220엔, 초·중학생 100엔 |
| 교통 | JR 이다선 ‘나가시노조’역에서 도보 약 8분. 자동차는 신토메이 고속도로 ‘신시로 IC’에서 약 5분(무료 주차장 있음) |
5. 시타라가하라 옛 전쟁터의 볼거리
재현된 마방책

시타라가하라 옛 전쟁터에는 전투 당시의 마방책이 재현되어 있습니다. 논 옆으로 통나무를 밧줄로 엮은 울타리가 길게 이어져 있어, 연합군이 어떻게 다케다군을 기다렸는지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마방책은 당시의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이 울타리로는 무섭겠다고 느꼈습니다. 눈앞으로 말이 달려오니 마음이 놓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길가에는 ‘나가시노·시타라가하라 합전 병풍 그림’과 마방책으로 가는 안내 간판이 서 있습니다.
신시로시 시타라가하라 역사 자료관

옛 전쟁터 근처에는 ‘신시로시 시타라가하라 역사 자료관’이 있습니다. 나가시노·시타라가하라 전투의 자료와 화승총을 볼 수 있습니다. 건물 앞에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무장의 동상이 서 있습니다.
| 개관 시간 | 9:00~17:00(입관은 16:30까지) |
|---|---|
| 휴관일 | 매주 화요일(공휴일인 경우 다음 평일), 12월 29일~1월 3일 |
| 입관료 | 일반 330엔, 초·중학생 100엔 |
| 교통 | JR 이다선 ‘미카와토고’역에서 도보 약 15분. 자동차는 신토메이 고속도로 ‘신시로 IC’에서 약 5분(무료 주차장 있음) |
6. 나가시노성과 시타라가하라 둘러보는 방법
나가시노성 터와 시타라가하라는 서로 떨어져 있어 자동차로 둘러보면 편리합니다. 저는 아침에 나가시노성 터를 본 뒤, 시타라가하라 옛 전쟁터와 자료관으로 향했습니다. 오후에는 도요하시 시내로 이동했습니다.
전철로 둘러보는 경우, JR 이다선 ‘나가시노조’역과 ‘미카와토고’역이 가장 가깝습니다. 열차 편수가 많지 않으니 시간표를 미리 알아 두면 안심입니다.
7. 자주 묻는 질문(FAQ)
Q. 나가시노 전투는 언제, 어디서 일어났나요?
A. 1575년(덴쇼 3년) 5월, 지금의 아이치현 신시로시에서 일어났습니다. 다케다군이 나가시노성을 포위했고, 5월 21일에 시타라가하라에서 결전이 벌어졌습니다.
Q. ‘나가시노 전투’와 ‘시타라가하라 전투’는 다른 전투인가요?
A. 같은 전투입니다. 나가시노성 농성전에서 시작해 시타라가하라에서 결판이 났기 때문에 ‘나가시노·시타라가하라 전투’라고도 불립니다.
Q. 도리이 스네에몬은 어떤 사람인가요?
A. 나가시노성을 지킨 오쿠다이라군의 병사입니다. 성을 빠져나와 오카자키성까지 원군을 요청하러 갔고, 돌아오는 길에 다케다군에게 붙잡혔지만 성에 “원군은 온다”고 알리고 처형되었다고 전해집니다.
Q. 마방책은 지금도 볼 수 있나요?
A. 시타라가하라 옛 전쟁터에 재현된 마방책이 있습니다. 근처의 신시로시 시타라가하라 역사 자료관과 함께 견학할 수 있습니다.
8. 정리
나가시노 전투는 작은 성의 농성전에서 시작되어, 시타라가하라 결전으로 다케다 가문과 오다·도쿠가와 가문의 세력 관계를 크게 바꾼 전투입니다.
- 1575년(덴쇼 3년) 5월, 다케다 가쓰요리가 나가시노성을 포위했다
- 도리이 스네에몬이 오카자키성까지 원군을 요청하러 갔고, 성의 병사들은 버텨 냈다
- 5월 21일, 시타라가하라에서 마방책과 철포를 활용한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이 승리했다
- 나가시노성 터(국가 사적·일본 100명성)와 시타라가하라 옛 전쟁터는 지금도 신시로시에서 견학할 수 있다
이번에 실제로 둘러보니 나가시노성 터 사적 보존관은 추천할 만한 곳이었습니다. 방문하실 때는 꼭 들러서 안을 둘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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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확인한 정보(2026년 10월 18일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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